‘에브리씽 머스트 고(Everything Must Go, 2010)’는 크게 울리지 않고, 특별한 사건이 없어요. 하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았어요. 한 남자가 인생에서 모든 걸 잃고, 정말 아무것도 없는 마당 한 켠에서 조금씩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예요. 버려진 소지품들 사이에 놓인 사람의 감정이 이렇게 묵직하게 다가온 건 처음이었어요.
1. 모든 게 끝난 자리에서
· 직장, 아내, 집, 그리고 희망
주인공 닉은 알코올 문제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되고,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떠나고 그의 소지품은 모두 잔디밭에 쌓여 있어요. 게다가 은행 계좌는 막히고, 휴대폰도 끊겨요. 정말 말 그대로 ‘인생이 바닥을 친 순간’이에요.
· 잔디밭 위의 삶
닉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아요. 소파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집 앞 잔디밭에서 며칠을 보내요. 지나가는 이웃들은 그를 이상하게 보지만, 닉은 그 공간에서 자신의 과거와 조용히 마주해요.
· 법적 제약이 만든 ‘야드 세일’
경찰은 일정 기간 안에 물건을 정리하지 않으면 불법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, 닉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소지품들을 팔기 위한 야드 세일을 시작해요. 그 과정에서 그는 물건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되짚기 시작하죠.
2. 물건과 기억 사이
· 버릴 수 없는 물건, 버릴 수 없는 감정
닉은 몇몇 물건을 정리하려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해요. 그 물건들엔 자신의 실패, 실수, 상처가 깃들어 있어요. 야드 세일을 통해 물건은 줄어들지만 그 안의 감정은 더 또렷하게 남아요.
·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
이웃들이 물건을 사러 오고, 그들과의 대화가 닉에게 새로운 시선을 열어줘요. 특히 아이 케니와의 만남은 처음으로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줘요. 두 사람의 우정은 이 영화의 가장 따뜻한 부분이에요.
· 과거와 화해하는 법
닉은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, 어떤 잘못을 했으며,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갖게 돼요.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진짜 전환점이에요. 큰 결단도, 드라마도 없지만 그 조용한 인정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.
3. 윌 페럴의 새로운 얼굴
· 코미디 배우의 진중한 연기
윌 페럴은 보통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역할로 익숙한데, 이 영화에선 정말 조용하고 슬픈 얼굴을 보여줘요.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는 느낌이에요. 오히려 말이 적어서 그 감정이 더 크게 전달됐어요.
· 웃음기 없이 더 인간적인
이 영화에서 그는 웃기지 않지만 그래서 더 ‘사람’ 같아요. 완벽하지 않고, 불안정하고, 결정도 느리고 실수도 많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은 인물이에요.
· 변화는 작고 천천히 온다
닉은 영화 내내 거창한 깨달음을 얻지 않아요. 하지만 조금씩, 천천히, 조용하게 한 걸음씩 삶을 다시 시작해요. 그 변화가 너무 현실적이고 감동적이었어요.
결론: 잃어버린 삶에서 다시 시작하기
‘에브리씽 머스트 고’는 모든 걸 잃은 남자의 이야기지만, 그 안엔 ‘모든 걸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’이 담겨 있어요. 재기극도 아니고, 희망찬 성장 드라마도 아니에요. 그저 한 사람이 자기 파편을 주워 담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가는 영화예요. 보는 내내 내 이야기 같고, 다 보고 나면 ‘나는 지금 내 삶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?’ 그런 생각이 깊게 남아요.